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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런던아름다운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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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hurch</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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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이사야 33:17-24]]></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51]]></link>
			<description><![CDATA[2025년 7월 10일 
[비움/감사] 
기온이 올라가니 다시 헤이피버로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며칠 기온이 떨어져 숨쉬기 편한 시간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새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관찰(요약)] 본문: 이사야 33:17-24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시는 구원의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심판 후 구원의 날이 오면 시온은 이전의 고통과 압제에서 벗어나 옛 상처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회복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사 33:18, 새번역) "너는 지난날 무서웠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서슬이 시퍼렇던 이방인 총독, 가혹하게 세금을 물리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던 이방인 세금 징수관들, 늘 너의 뒤를 밟으며 감시하던 정보원들,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과거 시온을 힘들게 했던 권세가들, 조롱했던 주변인들, 감시하고 눈치 주던 관찰자들이 사라지고 심지어 트라우마까지 극복한다고 말씀하신다. 두려움이 없는 평안함이 일상이 된다. 회복할 수 없다고 판단/정죄하던 자들의 소리는 영향력이 사라진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병과 육체/환경의 병을 완전히 치유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적용/결단] 
복음의 능력을 더욱 믿기 시작한 요즘과 이전의 내 모습을 비교한다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복음의 능력을 의지함이 약했던 시기에는 약한 만큼 다른 영향을 더욱 받았다. 이전에는 나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의 시선과 말 그리고 구조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 실체가 없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에 눌려 살았다. 그러나 주안에서 복음의 능력에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고 행동하면서는 그 지배로부터 영향을 덜 받는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에 따라 요즘 내가 느끼는 “격세지감”이다.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마저 사라진다고 약속하신다. 즉 나도 인지하지 못한 내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은 말씀을 신뢰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임을 재확인시키신다. 주변의 눈과 입에 관심을 끊고, 주만 의지하겠다.


[한줄 기도]
나를 압박하는 세상 권세에 굴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고 더욱 따르겠습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찬양] 주만 의지해
https://youtu.be/Dy82rJfUvNQ?si=tCEj5MC3TQbyr2kX]]></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Thu, 10 Jul 2025 10:14: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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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로마서 9장 1-5절]]></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50]]></link>
			<description><![CDATA[[비움] 1시간을 뺏겨 그런지 좀 더 피로감 증가, 설교 준비 부담(대상, 방법 등)
[감사] 내 만족이 충족되지 않아서 고민했던 어제를 보내고 새로운 아침을 시작하게 해주심이 감사합니다.

[본문 요약 및 붙잡은 말씀]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은 진심으로 형제인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소명을 받았는데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올리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적용]  
주님께 기도하는 나의 기도 내용을 돌아본다. 나는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제목이 있는지... 간절한지...

바울은 자신의 생명/영혼을 걸고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것처럼 막연한 실체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한국교회를 위해 위해 기도한다고 하면 도대체 한국교회란 실체가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막연한 공집합같은 느낌이다.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실체가 완전히 꾸렷하지 않은 다수다. 그 다수를 위해 생명 걸고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에서 모세를 보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어쩌면 내가 지금 고민하며 부딪치는 교회 사역도 이렇게 목숨까지 걸고 해야 하는구나. 정말 말이 아닌 생명을 걸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한줄기도] 성도와 그 가족까지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기에 주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Mon, 31 Mar 2025 06:26: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가복음 13:14-27]]></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9]]></link>
			<description><![CDATA[3월 20일(수요일) 말씀묵상
______________________

1. 비움: 일이 꼬이려고 하니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님 사실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감사: 그래도 꿈으로 미리 보여주셨기에 덜 충격받았습니다.)

2. 관찰  [마가복음 13:14-27]
1) 요약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심판의 징조를 말씀하셨다. 이전 조상들이 경험했던 예루살렘의 파괴보다 피해가 더 크며 이후에도 이런 재난을 경험할 수 없을 정도의 심판이다.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을 테니 혹독한 겨울은 피할 것을 기도하라 하셨다. 그때 거짓 메시야들이 등장하여 주의 백성을 미혹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셨다.

심판의 날은 우주가 파괴되는 충격을 줄 것이다, 그때 주께서 하늘로부터 영광으로 오신다. 천사들은 주의 백성을 땅에서 하늘까지 모을 것이다.

2) 나의 시선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을 언급한 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부터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도록 행동하고 기도하라는 경고로 보였다(18절).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란 심판의 끝이 아니라 인자가 오셔서 흩어진 백성을 모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심판 중에도 소망을 품어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하셨다.


3. 적용
화려한 성전을 바라는 제자들의 시선에서 세상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곤 하는 나를 발견한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요청하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세상의 화려함(물질주의)보다 심판을 앞둔 사람들의 운명에 시선과 관심을 두고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심을 느꼈다.

또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나의 정체성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함을 다짐한다.


4. 결단(한줄기도)
주님 다시 오시는 때까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관심과 노력을 다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Wed, 20 Mar 2024 12:43: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가복음 11:27-12:12]]></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8]]></link>
			<description><![CDATA[1. 비움: 1) 현재로는 마지막 주일에 있는 전교인 수련회와 나스코 전도사님의 아들(빅터)의 수술 일정 변경 등  
2)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고민들 그리고 나의 대안과 추진 등
(감사: 교회와 나의 몸이 힘들고 아픈 순간이 있다면 곧 이어 회복하는 순간도 있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관찰: 마가복음 11:27-12:12
1) 요약
예수님께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다음 날 다시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곳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만나 어제 행했던 일을 도대체 무슨 권위로 하였는가 따지고 물었다. '권위'라는 표현에는 '자격'과 '책임'이 포함되기에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고 하면 신성모독으로 고발하려고 했고, 그외 다른 대답이 나오면 하나님이 주신 권위도 없이 성전을 모독했다고 고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세례 요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랴라는 질문을 함으로 그들의 함정을 피하셨다.

악한 포도원 농부들 비유를 이어서 말씀하셨다. 주인이 있음에도 소작농들은 자신들이 포도원의 권리를 소유하려 했다. 주인의 권리인 임대료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냈으나 악한 소작농들은 주인의 종들을 폭행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나아가 아들도 죽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최후가 바로 종교지도자들의 최후가 될 것임을 알리셨다.

2) 나의 시선
말장난: 질문은 모르기 때문에 자세히 알려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악한 자는 질문은 사람을 망신주거나 사회적으로 매장하거나 더 나아가 죽이기기 위하여 사용한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론(백성, 막 11:32, 12:12)이다. 동시에 자신들의 손이 피묻히지 않고 여론과 백성을 이용하여 차도살인하려 한다. 

염치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는 자들은 염치가 없다. 산헤드린 지도자들이 누리는 권리와 권위는 그들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제도에 의하여 보장받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내 것'이라는 착각에 맡겨진 일에 충성하기보다는 소유권을 지키는 불필요한 일에 목숨을 건다. 


3. 적용
목사는 말씀의 사람이다. 말씀에 읽고 듣고 모르는 것은 알기 위해 질문을 한다. 그리고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파악하여 말과 글로 전달해야 한다. 내게 맡기신 역할이다. 그런데 만약 말씀의 진리를 벗어나 말장난으로 대중의 인기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는데 관심을 둔다면, 그것이 타락으로 가는 길에 올라선거다. 

나는 질문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하고 있는가? VS '나의 자리'를 보존하는데 힘쓰고 있는가? 사명의 집중력이 사라지면 자리 보존만 하려는 '하나님 나라의 적폐'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맡겨진 역할과 주님께 해야할 도리를 잘 지키는 것에 집중하고, 이와 관련하여 불필요한 고민이 마음에 자리하지 않게 해야 하겠다.


4. 결심(한줄기도)
주의 종으로 가져야 할 염치와 도리를 유지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Fri, 15 Mar 2024 15:19: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가복음 9:30-37]]></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7]]></link>
			<description><![CDATA[1. 비움: 아버지여 내 마음 속 근심과 걱정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집중하게 하옵소서.
(감사: 이번 주는 성도의 이사와 수련회 답사가 있어 날씨가 중요했는데, 가장 적합한 날씨를 주셨다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2. 채움: [마가복음 9:30-37]
1) 관찰(요약)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을 떠나 갈릴리 지나쳐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는 중 제자들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순간, 자신이 사람들에게 넘겨져 죽고 3일만에 살아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에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씀을 깨닫지 못한 점도 있고 지난 번에 있어 이번에도 죽음을 말하니 묻기가 두렵기도 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숙소에 있을 때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유는 길에서 제자들끼리 다툰 자신이 12명 중에 가장 높은 순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숙소에서 노는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와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환영하면 주님을 환영하는 것이며, 주님을 환영하면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2) 인상깊은 말씀과 나의 시선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제자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은 다르다. 목적이 서로 다르니 같은 길을 걸어도 한 마음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속마음과 비전을 말할수록 부담이 되고 두렵다. 왜 두려운 것일까? 예수님께서 죽기 때문에? 내가 볼 때에는 자신들의 소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정직했다. 그렇기에 서로 더 높은 순위에 자신을 올리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다툰다.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다. 

그들은 주님의 시선이 이런 자신들에게 향해 있고 주님의 귀가 그들의 음성을 듣고 있음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 뜨금없는 이야기가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어도 이렇게 기록에 남아 전승된 것을 보면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과거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했는가를 모두에게 정직하게 알린 것이다.
이것은 말로 그치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결단으로 보인다.


3. 적용
현재 내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해본다. 예수님이 떠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바라는 꿈을 이뤄줄 대상이 사라지는 것인가?
나의 꿈과 예수님의 비전이 동일하면 문제가 되지 않고 두렵지도 않을테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걷는다 하여도 동상이몽이라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말씀과 비전은 구체적인 듯하면서 모호하다. 모호하면서 구체적이다. 그만큼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동시에 지금은 모르지만 어느 날 그 말씀의 뜻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을테다. 주님은 그 순간을 기다리며 지금 말씀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꾸짖지 않고 말씀하시고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려주시는 주님이 고맙게 느껴진다. 

동시에 현실적 고민도 있다. "첫째가 되려면 섬겨라." 나는 첫째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오히려 싫다. 첫째는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든다. 그렇다고 꼴찌가 되고 싶은 마음 역시 전혀 없다. 그렇지만 섬기라 하시니 섬긴다. 여기서 여전한 갈등이 있다. 섬김은 지친다는 것이다. 알아주면 덜 지치지만, 더 요구하는 상황을 만나면 하던 것도 하기 싫어진다. 어떻게 사람을 대상으로 주님을 환영하는 마음을 갖을 수 있는가? 그렇기에 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한다.


4. 결단(한줄기도)
내 두려움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내 욕심이 아닌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며 기뻐하고 싶습니다. (본능을 거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Wed, 06 Mar 2024 09:11:5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가복음 9:14-29]]></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6]]></link>
			<description><![CDATA[1. 비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긴급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지만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습니다. 나머지는 주께 맡깁니다.
(감사: 한국 가는 일정을 결정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치료와 만남을 주께 맡깁니다. 김동호 목사님도 이번에 뵙고 싶네요.)


2. 채움: [본문  마가복음 9:14-29]
1) 관찰(요약)
산에서 내려온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본 장면은 남은 9명의 제자들이 큰 무리에 둘러싸여 있고,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논쟁은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의 간절한 사연과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비난하는 서기관들 그리고 그 모습을 관전하는 사람들로 뒤엉킨 상태였다.
예수님은 능력이 없이 상대탓을 하는 이들을 보며 "믿음이 없는 세대"라 꾸짖고, 귀신들린 소년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

이 과정에서 소년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간청하였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대답하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 대답하셨다.

- 인상깊은 말씀
[막9:19,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막9:23,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막9:29,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

2) 나의 시선
본문의 상황을 유추해보면, 제자들이 귀신들린 소년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기도와 축귀를 하는 행위를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신들이 보고 경험하고 들었던 방식일 수 있고 혹은 예수님의 과거 몸 동작을 따라했을 수도 있을 듯 하다. 눈으로 보여지는 몸 동작과 선언 방식과 행위들이 능력의 본질이 아니라 '믿음'과 '기도'가 능력의 본질임을 알려준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한다고 본 것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은 '믿음'과 '기도'뿐이다. 


3. 적용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가? 고민이 많다. 나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주신 깨달음을 실천하는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가 진심으로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게 전부다. 그렇지만 목회현장은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구조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것이 책에서 배우고 눈으로 보던 것과는 달리 현실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진하게 경험하고 있다. 뭔가를 열심히 해도 고치고 완전히 변화시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마주한 제자들의 답답함과 무능함이 내 모습같아 보였다. 

문제해결을 왜 하지 못하는가? 도움이 필요한 자의 가져야 할 믿음이 없고 도움을 줘야 할 자의 기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내가 해야 할 본질은 남의 목회방식을 연구하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향한 확고한 '믿음'과 그 '믿음'으로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에수님께서 하신 그 대답 외에 다른 것으로는 주님의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핵심이 아니라고 말하는 상황과 조건들을 우선순위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나는 제자들이 실패한 방법을 계속 되풀이하는 '믿음이 없는 세대'일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신다.


4. 결단(한줄기도)
목회와 사역의 우선순위는 항상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과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에 있습니다.
나를 성령으로 포멧 하시고 깨끗하게 말씀으로 설치하옵소서.]]></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Tue, 05 Mar 2024 11:21: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가복음 9:2-13]]></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5]]></link>
			<description><![CDATA[* 비움: OOO OO, 부활절 수련회 신청, 치료/검사 일정
(감사: 주일 예배를 잘 마쳤습니다. 잠시 나태해질 수 있었는데 지금이 더 깨어서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채움(관찰): [마가복음 9:2-13]
- 인상깊은 말씀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세 명의 제자들만을 데리고 올라간 이유는 이 날의 초현실적인 경험이 단순히 꿈이나 환상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인 것을 증언할 수 있는 증인의 수를 확보하기 위함일테다. 다만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명령하셨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리고 제자들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생겼다는 점도 관심있게 봤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메시야가 오기 전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어찌된 것인지를 물었다. 예수님은 기록된 것처럼 엘리야(세례 요한)은 왔고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우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인자 역시 기록된 것처럼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게 될 것을 알려준다.

지금까지는 제자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모습에는 갭(차이)이 있었다. 높은 산에 올라 변형된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습이었던 점과 에언대로 메시야가 오기 전 엘리야가 먼저 온 세례요한을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과 사람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다. 예언대로 메시야인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려주나, 그들은 예수님이 죽고 부활할 때까지는 깨닫지 못할 것임을 알려준다.


* 적용:
예수님을 나의 관점에서만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예수님은 나의 주관이 아닌 객관적인 말씀을 근거로 제대로 보길 원하신다. 즉 예수님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진리와 진실에 접근하도록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좀 더 집중에서 보고 들어야겠다.

말씀을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하던 서기관들도 정작 엘리야로 내려온 세례 요한을 핍박하고 멸시했다는 것을 보면, 겸손이 사라진 성경연구와 묵상은 예수님의 길을 막을 뿐임을 그리고 내가 어리석으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겠다. 

죽은 자의 부활이 무엇인지 개념은 없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듯이, 정말 내가 고민해야 할 질문은 내가 듣고 보는 그 말씀에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동시에 내 부족함이란 올무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 거리게 만드는 질문은 거부하겠다.  


결단(한줄기도):
현실 고민에서 나온 질문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서 내가 알아야 할 질문을 발견하게 하소서.]]></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Mon, 04 Mar 2024 18:00: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가복음 7:14-23]]></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4]]></link>
			<description><![CDATA[24. 2. 28. 수요일  [본문 마가복음 7:14-23]
묵상은 어제 밤에 했으나, 다시 복기하며 말씀을 읽고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거의 오랜만에 합니다.

비움: 피곤하여 예민해지지 않도록 새벽예배 후 11시까지 잠을 잤네요.  일어나니 재영한인교회연합회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음에서 비운 것이 아니라 급한 일들 다 처리하고 편한 마음으로 다시 말씀 앞에 섭니다.

감사: 급한 일은 남김없이 다 했다. 

본문 요약: 예수님께서 산헤드린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부로부터 온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부로부터 나온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던 제자들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예수님은 모든 음식은 사람의 배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나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을 알려주시며,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악의 씨(나의 표현)가 된다는 점을 말씀하셨다.

인상깊은 말씀:
(막 7:21-23)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새벽예배를 준비하며 주석을 참고하여 보니,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인간의 마음에서 나와서 인간을 더럽게 하는 12가지 항목들 증 11개가 십계명 6-9계명을 풀어 설명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맨 마지막에 '우매함, 어리석음'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없지만 앞서 '고르반'을 언급할 때에 5계명 '부모를 곤경하라'는 말씀이 있었으니, '어리석음'은 10계명에 해당된 것이라 판단했다. 예수님은 장로의 전통을 강조하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신 것이다.

인간을 향한 십계명(5-10)으로 보니 '우매함/어리석음'의 의미가 '남의 것을 탐내어 빼앗을 생각과 행동'이고 바보짓임을 알게 되었다. 

주중 여전도회 성경공부에서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질책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이 떠올랐다. 
내 마음에 원하는 것을 다 이루려는 탐욕이 일어날지라도, 그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성경학자라고 해도 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행동했기에 죄에 통치를 받는 자들이 되었다. 


적용:
예수님은 모두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막 7:14)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않으면 내 마음의 탐욕에 다스림을 받게 된다. 이것은 자연법칙이다. 그렇기에 의지를 가지고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하고, 모르면 물어서 깨달아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한줄기도[결심]:
평소 잘 알고 있는 말씀이라도 꼼꼼히 읽고 듣고 반복하여 묵상하는 습관을 놓치 않겠다고 또 다짐한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Wed, 28 Feb 2024 13:15: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7:14-20]]></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3]]></link>
			<description><![CDATA[요약: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백성들이 주위의 모든 민족들처럼 왕을 원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왕은 1) 이스라엘 민족이어야 하고 2)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 2) 병마를 이유로 애굽과 관계를 연결하지 말 것 3)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4)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쌓지 말 것 5)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성경을 기록하여 평생 가까이 하며 지킬 것을 명령하신다.
이렇게 하여 군림하는 자가 아닌 겸손히 백성을 돌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왕의 가문을 지켜 주신다 약속하신다.


인상깊은 말씀:
(신 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 17:18-20)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적용:
1. 죄인으로 지내던 옛 과거와는 완전히 단절한다. 뒤돌아보지도 말아야 하며 지도자라면 사람들을 그곳을 어떤 이유에서라도 왕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발전된 문명과 장비가 있다 할지라도 나의 안보와 안정(군대)을 강화하는 방법은 애굽이 아닌 주님이어야 한다. 이 철학을 정책으로 펴는 자가 리더다.

2. 하나님의 말씀은 늘 곁에 두어야 한다. 써야 하며 묵상해야 하며 말씀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과 국가 정책에 반영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 앞에 겸손해지며 백성을 사랑하게 된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면 주님께서는 가문을 보존하고 지켜주신다. 받은 복을 유지하고 후손에게 전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니 그대로 실천하겠다.


결단(한줄기도):
주님의 약속한 복이니 리더로서 갖춰야 할 품격과 가치관을 나의 삶에 적용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Fri, 02 Feb 2024 11:05: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6:18-17:13]]></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2]]></link>
			<description><![CDATA[요약: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회 구조를 지켜야 하는 재판장의 책무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주님이 주시는 땅에 들어가면 각 지파에 따라 재판장을 두고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재판관의 사적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상대의 외모와 배경이 객관적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원칙으로 첫째, 우상과 거짓 질서는 사회에서 근절해야 한다. 둘째, 뒤늦게 죄를 지은 자들이 알려지면 반드시 조사하여 죗값을 물어야 한다. 이때 공정한 판단을 위해 증인 2-3명이 필요하다. 셋째, 법을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실 장소(예루살렘)로 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같은 경우의 판결을 내렸던 재판장의 사례를 듣고 판결을 내린다. 재판장은 편파적으로 판결을 내리지 않게 공정해야 하며, 대상자들은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


인상적인 말씀:
(신 16: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신 17:6-7) 
[6]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7]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적용: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지키고 유지하고 전수하는 역할은 공의를 바로 세움에 있다.
지금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의 안전을 훼손하는 자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 죄를 따라하는 자들이 증가하며 그것을 바로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무너뜨리게 된다.
개인으로 살지만 사회가 원하는 최소의 법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나의 삶에서 이뤄지고 이것이 사회의 가치관이 되어야 오늘을 넘어 안전한 미래가 보장된다. 
특히 거짓 질서가 사회에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주의 말씀을 근거로 살아야 한다.

죄를 끊어내고 심판하는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진실 여부다.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가운데 사람들의 소문만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내 개인적인 의견과 판단으로 결정해서도 안 된다.
2-3사람이 정확한 증거 여기에 단죄 할 때에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대도록 한다. 이것은 무책임한 증언으로 사람의 생명과 사회적 생명을 끊어버리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속일지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나봇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은 사회적 생명과 생존권에 해당하는 땅을 빼앗겼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인으로 죽고, 아빠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인의 자녀라는 불명예를 감당해야 할 가족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용기 내어 싸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의 자녀들에게 돈과 이익보다 공의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주는 부모가 되겠다.


결단(한줄기도):
악한 시대를 살아도 저와 저의 가족은 주님의 공의만을 따르겠습니다.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Thu, 01 Feb 2024 11:29: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6:1-17]]></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1]]></link>
			<description><![CDATA[요약: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신다. 각 절기의 시기와 목적 그리고 방식을 알려주고 있다.
유월절/무교절은 출애굽을 기념하여 지킨다. 누룩이 없는 빵을 먹는 것은 그 순간이 얼마나 극적으로 이뤄졌는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칠칠절은 보리추수에서 밀추수기까지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50일간을 주님이 주신 복에 대한 감사를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하신다.
초막절은 모든 소출의 수확을 마무리함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로 텐트에서 지내면서 광야에서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먹이고 입히셨는지를 배우는 기간이다. 


인상깊은 말씀:
[신16:3-4] 
3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4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신16:10-11]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신16:14-15]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적용: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1년의 생활방식/생활양식(라이브스타일)을 하나님께 맞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삶의 리듬과 양식을 교회의 일정에 맞춰 산다. 내가 목사니 그렇다. 집에서는 아무래도 아이들의 학교 일정을 고려하여 가족의 일정을 잡는다.
세상적인 흐름도 있다. 유행이나 중요도에 따라 판단 기준들이 변하고 그런 흐름과 방식에 나 역시 적응해간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절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달력에 있는 명절이나 기념일이다. 설과 추석, 성탄절과 부활절은 세상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절기란 흔들리지 않는 일정이다.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원, 칠칠절은 일용할 양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초막절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동행을 기념하여 기억하게 하신다.
그리고 3대 절기 모두 이웃과 함께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보내야 한다.

개인주의가 강화되어 이제는 가족의 의미도 희석되는 이 시대에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 가치를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함은 주님께서 나와 주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임으로 기억하고 지키고 전수하겠다. 과거의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오늘의 나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통의 정식과 목적을 지키고 보존해야 오늘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게 만든다. 이 일을 해야 한다.


결단(한줄기도):
나의 삶의 패턴과 생활양식/라이프 스타일이 주님께 맞춰 사는 것을 기뻐하고 주님 안에서 참된 휴식을 갖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Wed, 31 Jan 2024 15:37: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5:1-23]]></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40]]></link>
			<description><![CDATA[1월 30일 묵상

요약: 
1-18절 안식년에 관한 규례를 선포하신다. 매 7년 끝에 빚, 주종관계를 청산할 것을 명령하신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노예였던 것과 자유를 얻을 수 있던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와같이 순종하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 '너희(이스라엘)' 중에 가난한 자가 없게 된다.

19-23절 첫 소산(수컷)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먹으라 하신다.
드릴 예물은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한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 하여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임을 분명히 해야 하며, 음식은 정한 자와 부정한 자 다 같이 먹으라 명령하신다.


인상깊은 말씀:
[신15: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신15:7-8]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신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신15:20-22]
20 너와 네 가족은 매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21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22 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적용(나에게!!):
모든 헌신과 드림은 주님께서 나를 속량하신 것에 대한 감사에 있다. 노예의 신분과 환경을 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막상 자유를 얻고 난 뒤에 올챙이 시절 기억하지 못하는 교만한 개구리로 살면 내 주변인들에 대한 용서와 탕감을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다. 주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속량하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한다면, 용서와 탕감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할지라도 결단할 수 있는 나의 문제이다. 

물론 그 대상이 '죄와 빚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큰 죄와 큰 빚을 진 자들'이 더 떳떳하게 살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음도 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받았음에도 오히려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폭행하고 억압하는 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자들이 있다 하여서 나 역시 그들처럼 살면 안 된다. 그들은 훗날 용서받은 모든 것을 토해내고 용서받지 한 신분으로 추락한다. 

안식년에 이뤄지는 면제는 개인적으로는 손해 같을지라도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통한 주님의 복이 이뤄지는 과정과 방법임을 믿어야 실천할 수 있다. 
새벽 설교를 마치고 다시 본문을 보니 15장의 말씀은 결국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가 개인을 넘어 모두에게 축복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으로라도 완악하게 하지 말고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는 말씀은 결국 나에게 복으로 돌아오는 축복의 말씀임을 새긴다.


실천(한줄기도):
나눔은 '반드시' 그리고 '넉넉히' 하겠습니다. -&gt; 24년에는 홈리스 봉사 사역 12번 실천하겠다. 부또보교회 어린이예배 공간 임대료 매월 헌금(12번) 보내기 실천하겠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Tue, 30 Jan 2024 11:47: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4:22-29]]></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9]]></link>
			<description><![CDATA[1월 29일 월요일 묵상

요약: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라고 명령하셨다.

인상깊은 말씀:
[신14:22-23]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적용(항상 나에게!!):
말씀을 읽으며 22절의 '마땅히'와 23절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다'라는 말씀이 들어왔다.

십일조를 드리고 있기에 십일조가 부담스럽다거나 주님과 나 사이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는 부담이 된다. 나를 통하여 듣는 사람들이 시험에 들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염려에 대한 원인으로 2가지 불확신이 있기 때문임을 알았다.
하나는 나를 통하여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십일조'에 관한 설교가 부담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거다. 혹 부담이 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옳은 선택과 방향성을 가질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가 있다면 나는 어떤 말씀을 전한다 하여도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전달자인 내 자신이 말씀을 가감없이 정말 전해야 한다는 믿음의 흔들림이다. 신명기 12장 마지막 절에 모세에게 명령하기를 '가감없이 전하라'하셨다. 내 역할은 설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이다. '어떻게 하면 잘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지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설득시킬까?'를 고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십일조'는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임을 알려야 한다. 다만 법을 강요하는 입장이 아니라 왜 드려야 하는지 말씀에 근거하여 전달하면 된다. 
믿음과 감사함이 없이는 주께 그 무엇도 드릴 수 없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니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부족함이 없기에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 것이 아님을 드림을 통하여 더욱 배워가게 된다. 이런 면에서 십일조를 포함한 드림은 주님을 경외함을 고백하는 동시에 경외하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를 배우는 훈련이다. 

나만 이 복을 누릴 것이 아니라 누리고 있다면 전하고 가르침에 있어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묵상하고 막상 전하는 자리에 서면 또 고민할 내 자신을 알기에 주님께 인간적으로 부담스러운 말씀일지라도 전할 용기를 구한다.


결단(한줄기도)
주의 말씀을 전함에 있어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항상 주께 겸손한 설교자가 되게 하옵소서.]]></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Tue, 30 Jan 2024 11:09:3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2:1-19]]></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8]]></link>
			<description><![CDATA[요약: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2세대들에게 약속에 땅에 들어가 '평생에' 행할 '예배'에 관한 규례와 법도를 알려주신다.
첫째, 해서는 안 될 우상숭배는 하지도 말고 그 땅의 모든 관습은 제거하라.
둘째, 알려준 정한대로 예배와 예물을 드려라.
셋째, 예배는 다함께(자녀와 노비 그리고 레위인들 등 자신 주변의 챙겨야 할 사람들) 드려라. 

인상깊은 말씀:
[신12: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신12:2-3]
2 ...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3 ... 깨뜨리며 ... 불사르고 또 ...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신12: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적용: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출애굽 1세대 그리고 다시 2세대에게 동일하게 전하는 말씀은 '평생에' 지켜야 할 원칙이다. 
만약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가정하면 '평생에'라는 말은 지금까지 동일하게 지키고 있어야 할 원칙이다. 즉 오늘을 사는 나와 모든 신앙인들이 지금도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1) 하지 말아야 할 행위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 2) 주님께서 내게 허락한 오늘의 예배 자리와 시간을 지키고 드려야 할 예물을 정성껏 드린다. 3) 내가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감사하며 내 가족과 나를 돕는 자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챙겨야 한다. 

하나님의 나의 손으로 수고하여 복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주셨음에 감사하며 주님 안에서 주님의 주신 것을 감사함을 늘 기억하겠다.


결단(한줄기도):
수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이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을 얻는 과정에서부터 제게 맡겨주신 사명과 사역에 복 주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함을 기억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Thu, 25 Jan 2024 11:42: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9-18]]></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7]]></link>
			<description><![CDATA[요약: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세대를 향해 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리더를 세웠는지를 알려준다. 혼자서 백성 전체의 짐을 질 수 없다는 표현은 내가 일이 너무 많아서 리더들을 세웠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비전이 크기 때문에 그 비전을 함께 동역하기 위해 세운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외모와 귀천을 따라 사람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지혜와 자질을 평가하여 추천하였고 모세는 주님의 주신 권한으로 임명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권한을 공적인 일에 공정하게 사용해야 한다.

인상깊은 말씀:
[신1:10-12]
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적용:
9절에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라고 표현을 읽을 때에는 단지 '내가 일이 너무 많아'로 읽혔는데, 10-12절을 읽으니 모세는 자신에게 일이 많아서 나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을 봤기 때문에 함께 할 동역자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리더는 비전을 봐야 하고 그 비전을 나눌 수 있는 동역자는 주님께서 준비 시켰음을 믿고 맡겨야 한다.
잘 알고 있는데 막상 실제 적용이 어렵다. 공동체 안에서 추천을 통해 선발 되었으니, 나는 믿고 맡겼다고 생각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다. 모세에게 아론이 있었고 여호수아가 있었듯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이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소통의 능력이 있기를 소원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우기까지 얼마나 집중적으로 기도 하셨는가! 그렇게 제자들을 선발하여 세웠음에도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여 얼마나 많은 실수들이 있었는가!

나 역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교회에 담임으로 섬길 수 있도록 하셨을 때에는 분명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을 믿고 주님께 주의 일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과 함께 동역할 사람들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겠다.


실천(한줄기도):
나를 보내신 주님을 믿고 능력과 동역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Tue, 09 Jan 2024 10:20: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1-8]]></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6]]></link>
			<description><![CDATA[요약: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한 지 40년째가 되는 해 11월 1일에 아라바 광야(약속의 땅 앞)에 도착했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란 새로운 세대에게 시내산(호렙산)에서 받았던 율법을 다시 전한다. 율법을 받은지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다음 세대에게 말씀을 전해주어야 하는 모세의 마지막 사명이다. 들어가서 차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선언한다.

인상깊은 말씀: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5]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8]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적용: 
[2, 8절]
줘도 못 먹나?
11일 걸릴 길을 38년을 방황하였다. 순종 하지 못한 결과가 이렇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나라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현재 나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들어가서 차지하라는 명령에 순종했을까?를 질문해본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자신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로 계산하지 말자.

'설명하다'의 원래 뜻은 '땅을 파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자세는 깊은 곳까지 말씀의 진정한 영양분을 이끌어내야 한다.
설교는 쉬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볍다는 의미는 아닐테다. 어렵고 쉽고의 관점이 아니라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땅을 깊이 파는 노력을 요청하신다. 
모세는 지금이 마지막 사명의 자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열정을 다해 힘을 냈을 것 같다. 내가 하는 설교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하자.


주님께서 주신 땅은 걱정과 근심이 아닌 본질로 들어가서 얻으면 된다.

실천(한줄기도):
머리 아픈 해결 못한 문제를 다시 만났다. 곁에서 돌면서 해결할 수 없기에 기도하며 직접 부딪치려 한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Mon, 08 Jan 2024 07:06:4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4년을 맞이하며]]></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5]]></link>
			<description><![CDATA[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이동수 선수가 일반인 동호회에 가서 강연한 내용 중에 인상 깊은 조언이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몸을 제대로 풀지도 않고 코트에 들어가 경기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몸에 부담을 주는 위험한 행동이며,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코트에서 뛰기 전에 기본 스윙의 자세를 1시간 30분 정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코드에 설 수 없습니다.” 

  기본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누구나 다 기본의 튼튼히 하는 훈련을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을 하겠다는 것이 꼭 ‘기본만’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반복한 후에 심화 과정에 들어서고 더 나아가 경기에서 뛰듯이, 내가 반복 실천하는 기본은 경기에 나가서 싸워 이기는 실력을 목표로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경기에 서는 선수가 기본을 잘 잡혀 있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반대로 기본이 약하면 특정 상황 속에서 태도와 자세가 무너집니다. 삶을 사는 태도와 자세는 이미 형성된 ‘기본’에서 나옵니다. 기본은 기초(basic)이면서 동시에 토대(foundation)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을 대하는 태도, 시간을 대하는 태도 등에는 그 사람의 기본이 담겨 있습니다.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존중과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학업과 직장에서의 기본은 맡겨진 일에 성실한 자세입니다.

   저는 주를 위해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기에 신앙과 생활의 좋은 기본을 지키는 2024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기본을 한다는 것은 우선순위를 먼저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를 위한 것이 결국 제게 가장 좋은 것임을 알기에 제게 기본은 ‘주님(예수님)’입니다. 우선순위에 항상 ‘주님’을 놓고 해야 할 일들을 경주자의 자세로 하려 합니다. 경기에 임하는 자는 참가의 의미를 두지 않고 승리와 완주를 목표로 합니다. 성도님들도 흔들리지 말고 주님과 함께 꼭 완주하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Mon, 08 Jan 2024 06:46: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명기 1:34-46]]></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4]]></link>
			<description><![CDATA[요약: 하나님께서 약속한 좋은 땅을 볼 수 없음은 그들이 악한 세대이기 때문이었다. 악한 세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오히려 거역하고 자신들이 판단대로 행동하려 한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광야로 가라' 했더니, 잘못했다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싸우겠다고 고집 피우며 싸우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 하나님께 울었으나 듣지 않으셨다.

인상깊은 말씀: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43]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45]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적용: 
1.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에게는 주님의 약속을 선물로 받을 수 있지만, 불신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누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그의 후손까지 책임지신다.
24년 그리고 앞으로 몇 년 간 내가 싸워야 할 대상과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기도하며 구체적으로 리스트를 정해야겠다.

2. 악한세대때문에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리더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큰 지를 알려주신다.
여기서 달리 생각해보면, 불순종하는 백성 때문에 모세가 피해를 입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세는 이후에도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함께 생활한다.
리더는 백성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끝까지 책임지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3. 손익계산하고 신앙생활을 해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 뒤늦은 후회로 떠난 버스 잡으려 하기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것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이다.

4. 청개구리 신앙은 진실한 회개가 아닌 피해에 대한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호소할 뿐이다. 이런 울부짖음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고 무시한다.
진짜 반성과 회개는 손해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결단(한줄기도):
순종이 최우선입니다. 손익계산하지 말고 현재 주신 사명에만 몰입하고 나아가게 하소서.]]></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Wed, 03 Jan 2024 11:18: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그동안 수고에 감사드립니다.]]></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3]]></link>
			<description><![CDATA[우리 아름다운교회가 창립된지 25년이 되었습니다. 1998년 12월 20일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원로 목사님 가정과 수많은 성도님들의 헌신과 섬김 그리고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교회를 위한 헌신과 섬김으로 맡은 역할을 성실히 해주셨던 이왕우 안수집사님께서 만 70세가 되심으로 은퇴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제가 아름다운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한 이래로 제 곁을 지켜 주셨고 크고 작은 여러 일들에 수고해 주셨습니다. 늘 힘이 되어 주셨고 위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5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창립 25년 기념 감사예배로 드리는 오늘 집사님의 은퇴식을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이왕우 안수집사님을 처음 뵙던 날 나눴던 대화를 기억합니다. 함께 배드민턴을 하자고 권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꾸준해야 합니다.” 저는 이 한 문장이 집사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설명한다고 봅니다. 매 주일이면 교회당 앞에 서서 성도님들을 웃으며 반겨주시는 일을 쉬지 않고 하셨습니다. 재정부 부장으로서 섬겨주셨고 항상 교회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늘 묵묵히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섬김의 자리를 감당해 주셨던 이왕우 집사님은 화려하지 않지만, 주님과 성도들에게 성실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교회 리더의 좋은 모델이었습니다.

  이왕우 안수집사님의 은퇴는 성도들의 대표로서의 권한과 책임의 자리에서 내려오시는 것이지 직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 아름다운교회의 안수집사님이십니다. 지금껏 안수집사로서 남모를 고민과 어려운 자리를 감당해 주셨던 우리 안수집사님. 은퇴가 아름답고 명예로운 순간임을 제게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위한 수고와 헌신을 주님께서 기쁘게 기억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를 대표하여 “그동안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img src="https://bkclondon.com/wp/wp-content/uploads/2023/12/KakaoTalk_20231217_184842414_01-577x1024.jpg" alt="" width="577" height="1024"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1275" />]]></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Wed, 20 Dec 2023 10:50: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3"><![CDATA[교회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여호와는 내 편입니다.]]></title>
			<link><![CDATA[https://bkclondon.com/wp/?kboard_content_redirect=32]]></link>
			<description><![CDATA[우리가 무엇인가를 기도하고 선포할 때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선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입술에 권세가 있고,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믿음을 주시기에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고, 아직 불안하고, 아직 완성된 일이 아니고, 아직 완전한 평안 가운데 있지 않고, 여전히 의심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불안함이 있어도 입을 열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믿음을 불어 넣으시면 그때부터는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이도록 하십니다.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입니다. 처음 믿음으로 고백할 때는 여전히 사람들의 위협, 저들의 칼, 공격, 곡해, 원통함이 보이지만, 성령께서 깊은 기도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면 오직 하나님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안에서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기도는 처음부터 완전하게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정말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해결이 안 되고, 억울함과 원통함이 그대로 있지만, 일단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 나라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 나라의 모든 악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라고 선포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아직 확신이 없고, 두려움이 있다면 더욱 믿음으로 선포하면서 기도합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괜찮습니다.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질병?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두려움?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 고성준, &lt;황금시편&gt; 중에서]]></description>
			<author><![CDATA[백장현 목사]]></author>
			<pubDate>Wed, 20 Dec 2023 10:49: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bkclondon.com/wp/?kboard_redirect=1"><![CDATA[말씀묵상]]></category>
		</item>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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