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마가복음 9:30-37
묵상
Author
백장현 목사
Date
2024-03-06 09:11
Views
168
1. 비움: 아버지여 내 마음 속 근심과 걱정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집중하게 하옵소서.
(감사: 이번 주는 성도의 이사와 수련회 답사가 있어 날씨가 중요했는데, 가장 적합한 날씨를 주셨다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2. 채움: [마가복음 9:30-37]
1) 관찰(요약)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을 떠나 갈릴리 지나쳐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는 중 제자들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순간, 자신이 사람들에게 넘겨져 죽고 3일만에 살아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에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씀을 깨닫지 못한 점도 있고 지난 번에 있어 이번에도 죽음을 말하니 묻기가 두렵기도 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숙소에 있을 때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유는 길에서 제자들끼리 다툰 자신이 12명 중에 가장 높은 순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숙소에서 노는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와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환영하면 주님을 환영하는 것이며, 주님을 환영하면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2) 인상깊은 말씀과 나의 시선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제자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은 다르다. 목적이 서로 다르니 같은 길을 걸어도 한 마음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속마음과 비전을 말할수록 부담이 되고 두렵다. 왜 두려운 것일까? 예수님께서 죽기 때문에? 내가 볼 때에는 자신들의 소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정직했다. 그렇기에 서로 더 높은 순위에 자신을 올리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다툰다.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다.
그들은 주님의 시선이 이런 자신들에게 향해 있고 주님의 귀가 그들의 음성을 듣고 있음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 뜨금없는 이야기가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어도 이렇게 기록에 남아 전승된 것을 보면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과거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했는가를 모두에게 정직하게 알린 것이다.
이것은 말로 그치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결단으로 보인다.
3. 적용
현재 내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해본다. 예수님이 떠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바라는 꿈을 이뤄줄 대상이 사라지는 것인가?
나의 꿈과 예수님의 비전이 동일하면 문제가 되지 않고 두렵지도 않을테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걷는다 하여도 동상이몽이라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말씀과 비전은 구체적인 듯하면서 모호하다. 모호하면서 구체적이다. 그만큼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동시에 지금은 모르지만 어느 날 그 말씀의 뜻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을테다. 주님은 그 순간을 기다리며 지금 말씀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꾸짖지 않고 말씀하시고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려주시는 주님이 고맙게 느껴진다.
동시에 현실적 고민도 있다. "첫째가 되려면 섬겨라." 나는 첫째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오히려 싫다. 첫째는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든다. 그렇다고 꼴찌가 되고 싶은 마음 역시 전혀 없다. 그렇지만 섬기라 하시니 섬긴다. 여기서 여전한 갈등이 있다. 섬김은 지친다는 것이다. 알아주면 덜 지치지만, 더 요구하는 상황을 만나면 하던 것도 하기 싫어진다. 어떻게 사람을 대상으로 주님을 환영하는 마음을 갖을 수 있는가? 그렇기에 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한다.
4. 결단(한줄기도)
내 두려움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내 욕심이 아닌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며 기뻐하고 싶습니다. (본능을 거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감사: 이번 주는 성도의 이사와 수련회 답사가 있어 날씨가 중요했는데, 가장 적합한 날씨를 주셨다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2. 채움: [마가복음 9:30-37]
1) 관찰(요약)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을 떠나 갈릴리 지나쳐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는 중 제자들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순간, 자신이 사람들에게 넘겨져 죽고 3일만에 살아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에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씀을 깨닫지 못한 점도 있고 지난 번에 있어 이번에도 죽음을 말하니 묻기가 두렵기도 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숙소에 있을 때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유는 길에서 제자들끼리 다툰 자신이 12명 중에 가장 높은 순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숙소에서 노는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와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환영하면 주님을 환영하는 것이며, 주님을 환영하면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2) 인상깊은 말씀과 나의 시선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제자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은 다르다. 목적이 서로 다르니 같은 길을 걸어도 한 마음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속마음과 비전을 말할수록 부담이 되고 두렵다. 왜 두려운 것일까? 예수님께서 죽기 때문에? 내가 볼 때에는 자신들의 소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정직했다. 그렇기에 서로 더 높은 순위에 자신을 올리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다툰다.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다.
그들은 주님의 시선이 이런 자신들에게 향해 있고 주님의 귀가 그들의 음성을 듣고 있음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 뜨금없는 이야기가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어도 이렇게 기록에 남아 전승된 것을 보면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과거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했는가를 모두에게 정직하게 알린 것이다.
이것은 말로 그치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결단으로 보인다.
3. 적용
현재 내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해본다. 예수님이 떠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바라는 꿈을 이뤄줄 대상이 사라지는 것인가?
나의 꿈과 예수님의 비전이 동일하면 문제가 되지 않고 두렵지도 않을테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걷는다 하여도 동상이몽이라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말씀과 비전은 구체적인 듯하면서 모호하다. 모호하면서 구체적이다. 그만큼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동시에 지금은 모르지만 어느 날 그 말씀의 뜻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을테다. 주님은 그 순간을 기다리며 지금 말씀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꾸짖지 않고 말씀하시고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려주시는 주님이 고맙게 느껴진다.
동시에 현실적 고민도 있다. "첫째가 되려면 섬겨라." 나는 첫째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오히려 싫다. 첫째는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든다. 그렇다고 꼴찌가 되고 싶은 마음 역시 전혀 없다. 그렇지만 섬기라 하시니 섬긴다. 여기서 여전한 갈등이 있다. 섬김은 지친다는 것이다. 알아주면 덜 지치지만, 더 요구하는 상황을 만나면 하던 것도 하기 싫어진다. 어떻게 사람을 대상으로 주님을 환영하는 마음을 갖을 수 있는가? 그렇기에 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한다.
4. 결단(한줄기도)
내 두려움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내 욕심이 아닌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며 기뻐하고 싶습니다. (본능을 거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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